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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이 끝날 무렵, 신해철 형님의 부고를 들었다.

믿을 수 없어 몇 번이나 기사를 보고 또 봤던 기억이 난다.


삶과 죽음은 얼마나 가까운지 

불과 얼마 전까지 TV에서 건강한 모습을 본 것 같은데

 갑작스런 소식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난 신해철의 팬이었구나.'


어릴 때부터 늘 그의 노래를 듣고 자랐으면서 왜 한 번도 팬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의 직설적인 화법이 부담스러웠을까?


다 알고 있고, 공감하지만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누구보다 용기있게, 소신있게,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이 신해철이었다.


가수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합리, 부조리, 부당한 것에 맞섰던 사람이었다.


나는 왜 그를 앞에서 응원하지 못하고

뒤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을까?

 

2010년 6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뜨지 못해 아쉬운 한 곡을 뽑아 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민물장어의 꿈'이다. 팬이면 누구나 알지만 뜨지 않은 어려운 노래다.

이 곡은 내가 죽으면 뜰 것이다.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다."


민물장어의 꿈...

제목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노래를 듣는 순간,

아주 오래 전 들었던 기억이 났다.


매우 서정적이고 악기 편성도 단순해서

왠지 그의 노래가 아닌 것처럼 느꼈던 그 곡이었다.


당시 내가 은연중에 그에게 바란 것은 

현란한 반주에 직설적인 가사를 선언하듯 당당하게 부르는

HERE I STAND FOR YOU

같은 노래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부재 후에 '민물장어의 꿈'을 다시 들어보니

그가 오래전부터 창작을 위한 고뇌의 길을 홀로 쓸쓸히 걸어왔구나 하는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민물장어의 꿈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아직도 응원곡으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정말 놀라운 데뷔곡이 아닐 수 없다.


솔로곡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역시 명곡이다.


그리고 넥스트의 주옥같은 명곡들.


그의 표현대로라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끝나고 물이 넘칠 즈음

그는 돌연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대중에게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공부하며 만든 노래가

<민물장어의 꿈>이다.


절친 남궁연씨의 인터뷰를 보면 

소음 때문에 식탁 두 개에 이불을 씌워놓고 녹음을 했다는 

그 앨범에 들어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민물장어였을까?





민물장어(뱀장어)


장어류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유성 어류.

성장 후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와 반대.

유생기 때 강으로 올라와 5~12년을 산 후 멀고 깊은 바라로 떠나,

태어난 2,000~3,000m 심해에 알을 낳고 수정 후 죽음.

갯장어, 붕장어와 달리 등지러미가 가슴지느러미보다 뒤에서 시작함. 



댓잎뱀장어

유생기의 뱀장어는 투명하고 버드나무 잎과 같은 모양이라 댓잎뱀장어라고 부름.



실뱀장어

댓잎뱀장어가 자라며 하구 근처에 도찰할 무렵이면

가늘고 투명한 실뱀장어로 변태하여 강을 거슬러 오름.

3월 초에서 말경 실뱀장어를 잡아 뱀장어 양식의 종묘료 사용함.



풍천장어

뱀장어 중 최고로 인정받는 풍천장어.

풍천은 지역명이 아닌 바람 風, 내 川의 풍천.

바닷물을 따라 강으로 들어올 때 육지를 향해 부는 

바람을 타고 강으로 들어오는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함.

풍천장어가 특산인 지역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전라북도 고창군 선운사 앞 인천강 유역.  




가끔 보양을 위해 먹는 뱀장어가 민물장어였다.

민물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강에서 산 뒤

다시 바다로 돌아가 알을 낳은 후에 일생을 마감하는 녀석이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기억하고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나

강을 거쳐 바다로 가는 민물장어나 둘 다 대단하다.


태어나긴 했지만 오랜시간 살아온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여정은 얼마나 외롭고, 고될까?


신해철 형님 역시 그간 구축해놓은 인기로 편안히 살 수 있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그룹에서 솔로로, 밴드로, 유학으로 잠시도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좋은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민물장어의 꿈에서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라고 하셨는데,

그 누구의 평가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에서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남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르셨던 것일까?


만약 그곳에 도달했다면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셨을까?


가사에 '언젠가'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리고 평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자존심을 고려하면 

아직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분명 손사레를 칠 것 같다.


그만큼 욕심이 많고 완벽을 추구한 창작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이상 기회가 없다.


아직도 그의 죽음을 두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기 때문이다.


원이이 뭐든 이제는

돌이킬 수 없기에 더 안타깝다.


뮤지션이 아닌 한 인간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빠로, 자식으로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팬들에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음악을 주다 보니 시간이 많이 모자랐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면에서 그의 음악을 듣는

우리 모두는 인간 신해철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오래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가수 신해철은 

고난의 여정을 통해 수없이 많은 완성도 높은 곡을 만들어냄으로써

가고자 했던 그곳에 이르셨던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심장이 터질 때까지 노래하고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꿈은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통해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그러니까

민물장어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기를....

 







[참고]

[네이버캐스트] 이미지 사이언스 '장어' 

[한겨레] 신해철 "내 장례식장에서 퍼질 곡" '민물장어의 꿈'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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