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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 지음


파이 이야기는 파이 파텔이라는 인도 소년의 표류 이야기이다.

책 표지만 봤을 때는 정글북처럼 동물들과 호형호제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틀렸다.

야생의 호랑이와 한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이야기.

애니메이션 보다는 다큐에 가까운 생존기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던 중 배가 침몰한다.

파이 가족이 탄 화물선에는 미국에 팔기로 한 동물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혼자 살아남은 파이의 구명보트에도 동물들이 타게 되었다.

 

얼룩말은 파이가 구명보트에 타고 얼마 후 위에서 떨어졌다.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크가 헤엄쳐 배에 올랐고,

다음 날 바나나 더미를 타고 떠다니던 오랑우탄이 합류했다.

하이에나는 언제 탔는지 모르지만 구명보트에 있었다.

 

파이는 얼룩말과 처음 만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갑자기 공중에 이 이상한 게 나타났다.

그것은 경주마처럼 우아하게 뛰어내렸다.

그것은 방수포 부분에 떨어지지 않았다.

무게가 250킬로그램쯤 되는 수놈 그랜트얼룩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경주마는 두 눈을 가리고 죽어라 뛰는 모습인데 우아하다고 한 걸 보면

고속촬영으로 발레하듯 천천히 다리를 뻗었다 접는 리듬있는 동작을 비유한 것 같다.

 

파이는 얼룩말이 공중에서 우아하게 춤추듯 내려온다고 느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뒷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쿵하고 떨어졌다.

얼룩말은 뒷다리가 심하게 부러져 떨어진 모습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럼에도 파이에게 얼룩말은 보기가 좋았다.


"얼룩말은 보기 좋은 동물이었다.

물에 젖어 흰 부분은 밝게 빛나고 검은 줄은 새까맸다.

그래도 기묘하고, 깔끔하며, 대담한 예술적인 디자인에 멋진 두상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나 역시 얼룩말을 볼 때 늘 그런 생각을 했다.

깔끔하다.

세련됐다.

그래서인지 디자인에서 호피무늬와 함께 둘째가라면 서러울 패턴이 얼룩말 무늬이다.


 이미지 freepik

 

하지만 그렇게 보기 좋은 얼룩말은 다리가 부러져

하이에나에게 제대로 저항도 못 해보고 가장 먼저 죽었다.

파이가 보는 앞에서 산 채로 잡아먹혔다.

 

가장 예술적으로 생긴 얼룩말이

가장 예술과는 거리가 먼 하이에나에게 당하는 장면은

야생은 물론 배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보더라도

당연한 수순이지만

어딘가 불합리하고 불공평해 보였다.

 

얼룩말을 다시 살리고 싶었다.

.

.

.

.

 

얼룩말 대체 넌.... 누구냐?

 


크기

 몸 길이 1.1~1.5m, 어깨높이 1.2~1.6m

 생식

 임신기간 300~375일 1회 1마리

 수명

 약 25년

 천적

 사자, 표범, 하이에나 등

 생활양식

작은 무리 혹은 큰 무리 생활 

 서식장소

사바나, 목초지, 시야가 트인 덤불 

 분포지역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특징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꼬리 끝에만 긴 털송이가 있음

발굽은 당나귀와 말의 중간 크기

시각 후각 예민

적이 오면 집단 방어,

둥글게 에워싸고 뒷다리로 공격함


 얼룩말의 종류와 특징


그랜트얼룩말

그래비얼룩말

채프먼얼룩말

하트만산얼룩말

배에서부터 엉덩이까지

굵은 줄무늬가 있다.

귀가 크고 둥글며

발굽이 넓다.

가는 줄무늬가 많으나 

배는 하얗고 줄무늬가 없다.

얼룩말 중 가장 크다.

줄무늬가 몸쪽은 얇고,

엉덩이 쪽은 두껍다.

줄무늬 사이에도

연한 줄무늬가 있다.

 목에 혹이 있고,

머리는 짧고 통통하다.

몸 전체에 줄무늬가 있지만

배는 하얗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차이가 있다.

그 중 파이 이야기에 나온 얼룩말은 그랜트얼룩말이다.


어쨌든 줄무늬가 있는 건 다 동일하다.

얼룩말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 중 하나


"얼룩말은 흰 바탕에 검은 줄인가?

검은 바탕에 흰 줄인가?"


이 질문에 백인들은 흰 바탕에 검은 줄이라 답했고

흑인들은 검은 바탕에 흰 줄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뭐 다 똑같이 대답하지는 않았겠지만

사람의 관점 혹은 사고의 기준은 

역시 '자기 자신'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러한 자기 중심적 사고는

이기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늘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몇몇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본 봐로는

다 달랐다. 자신의 피부색에 상관없이.

흰 바탕!

검은 바탕!

심지어 원래 두 가지 색이라는 등.


나처럼 별다른 기준없이 사는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그런것 같다. 


어쨌든 정답은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라고 한다.

자료에는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나와있다.


어떻게 입증했을까 궁금했는데

캐리언니가 에버랜드에 간 동영상을 보면

사욕사 언니가 확실하게 말한다.


"입술에는 털이 없어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요. 

몸에 있는 흰색, 검은색은 모두 털입니다." 


그러니까 털을 밀면 검은색이라는 얘기다.

그럼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가 아니라

검은 피부에 흰 색, 검은 색 털이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


"얼룩말이 줄무늬를 가지게 된 이유는?

혹은

얼룩말 줄무늬의 기능은?"


자료를 찾아보니

오래 전부터 논란이 많은 주제였다.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 vs 찰스 다윈


윌리스(자연선택설로 유명)

"얼룩말은 줄무늬를 지녀 웃자란 풀 숲에서 위장할 수 있다."


다윈(진화론 주장) 

"얼룩말의 줄무늬는 남아프리카의 넓은 평원에서 아무 보호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 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이론이 제시 되었다고 한다.


그 중 '다즐 위장(Dazzle camouflage)"이 가장 그럴 듯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얼룩말이 줄무늬를 이용해 새벽이나 해질녘에 풀숲에서 위장하거나 

서로 신호를 주고 받는데 사용한다는 주장이다.


다즐 위장이란?

대비가 뚜렷한 두어 가지 색으로 그려진 기하학적인 무늬가 서로 간섭 효과를 일으켜, 

관찰자로 하여금 그 크기, 속도,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위장


세계 1차 대전에서 다즐 위장이 활용되었는데

시각적 교란을 일으켜 적의 정확한 사격을 어렵게 했다고 한다.


1918년 다즐 위장 전투함

출처  Wikimedia Commons 


하지만 당시 어떤 시각적 효과가 눈에 혼란을 일으키는지 몰랐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퀸즈랜드대학과 영국 로열할로웨이대학의 과학자들은 

‘움직임 추적 알고리즘'을 사용해

얼룩말이 무리 지어 움질일 때 나타나는 움직임 신호를 분석했다.


그 결과

얼룩말의 움직임 신호는 '허위 정보'가 많았다.

얼룩말의 흑백 무늬가 두 가지 착시효과를 일으켜 
관찰자가 정보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착시는 '웨건 휠 효과(wagon wheel effect)'이다.
자동차의 바퀴가 일정한 속도가 되면 뒤로 도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웨건 휠 효과라고 한다.



두 번째 착시는 '바버폴 착시(barberpole illusion)'이다.

이발소 간판은 실제로는 가로로 움직이지만 줄무늬가 세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로열할로웨이대학의 요한 쟁커(Johannes Zanker) 교수는

 

“얼룩말의 등과 목에 있는 좁은 세로 줄무늬가 

등의 넓은 사선 줄무늬와 더불어 

예상치 못한 ‘움직임 신호’를 보냈으며, 

이는 따로 움직일 때보다 무리를 지어 움직일 때 더 강해졌다. 

이러한 착시로 얼룩말을 물기 위해 다가 오는 곤충은 

얼룩말의 몸에 제대로 착지할 수 없으며, 

얼룩말을 쫓던 포식자들은 사냥할 시점을 정확히 포착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니까 얼룩말의 줄무늬는

무리 생활을 하는 얼룩말이 움직일 때 

쇠파리와 같은 흡혈곤충이나 천적의 시감각에 착시 효과를 일으켜 

혼란을 주는 기능을 한다는 말이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의 과학자들 역시

 얼룩말의 줄무늬에 대해

쇠파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얼룩말과 말, 당나귀의 지리적 분포, 지역별 얼룩말 무늬의 패턴, 

서식지의 기온과 지형, 천적의 범위, 쇠파리 서식 지역 등 다양한 변수들을 조사했는데 

줄무늬와 압도적인 연관성을 가진 요소는 오직 쇠파리였다고 한다.


얼룩말은 아프리카 포유류 중 털이 가장 짧다고 한다.

그래서 쇠파리의 공격에 취약한데,

쇠파리가 많이 서식하는 지역일수록

얼룩말 몸에 있는 무늬가 더 컸다고 한다.


다만, 쇠파리가 왜 흑백 줄무늬를 싫어하는지는 밝히지 못했는데

그것은 위에 나온 다른 과학자들이 연구한

얼룩말의 움직임에 따른 착시현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얼룩말에 대한 궁금증이 제법 풀린 것 같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왜 파이 이야기에서 

많은 동물 중에서 얼룩말을 한 배에 태웠을까?


호랑이는 가장 상위의 포식자로 긴장감을 위해 탑승

오랑우탄은 사람과 비슷한 외모로 동정심과 연민 유발을 위해 탑승

하이에나는 물불 안 가리는 성격으로 위험 유발을 위해 탑승


보기 좋은 동물이라고 해놓고

가장 먼저 죽는 얼룩말


작가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으나, 

혹은 별 게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초식동물 중에 가장 보기가 좋아서가 아닐까 싶다.


야생에서는 줄무늬를 이용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줄무늬는 그저 보기 좋은 떡이다.


그렇다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뭐 그런 단순한 의도가 아니라

파이가 배를 타면서부터 생존이 시작되는데,

보기 좋은 육상동물인 얼룩말의 죽음은

아름다운 육지와의 이별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얼룩말은 멋지다.

보기 좋다.


내 눈이 착시를 일으키고 있지 않다면.



참고

두산백과 "얼룩말"

나무위키 "얼룩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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